2009년 5월 15일 금요일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결핍된 가족애의 필연적 비극.

영화 시작 전 자막은 영화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메타포.

    아마도 당신은 30분간 천국에 있을 것이다.

    악마가 당신이 죽은 것을 알기 전까지는….


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라는 제목은 아일랜드 축사 ‘May you be in heaven a half hour Before the devil’s knows You’re dead’ 에서 유래한다. 악마가 죽음을 인식하기 30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까지 쾌락에 머물 수 있는 찬라의 순간을 의미한다.


80세를 넘은 시드니루멧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인간이 탐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욕망이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가를 너무나도 짜임새 있게 그려 놓았다.


다소 선정적인 장면(부부의 정사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마약중독자면서 분식회계로 감사팀의 조사압박에 시달리는 형 앤디와 자녀의 양육비 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해 아내와 딸에게 늘 당당하지 못한 동생 행크가 주축이다. 형 앤디는 회사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의심을 받고 있는 상태고, 동생은 딸의 학비조차 챙길 수 없는 상황으로,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압박이 심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달리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형제는 결국 범죄를 모의한다.



형 앤디는 회계감사의 압박으로 벗어날 자금을 만들어 아내와 함께 브라질로 떠날 단꿈을 젖어있고, 동생 앤디는 딸아이의 양육비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당당한 아버지의 모습을 꿈꾼다. 둘은 그렇게 작은 보석가게를 털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형이 털자고 제안한 보석 가게는 다름아닌 부모님의 가게다. 다소 패륜적인 코드로 시작하는 범죄모의 설정은 영화의 비극을 암시하는 전주곡이다. 계획실행 당일 소심한 행크는 과격한 친구 바비를 끌어들이게 되는데, 계획이 틀어지는가 싶더니, 우발적인 사고로 어머니가 살해된다.


어머니인 동시에 아내를 잃게 된 앤디 가족은 거의 공황상태다. 하지만 영화는 비틀어진 사건에 머물러 있지 않고, 가족의 잔혹스런 사건이 진행되기 전 후, 약 일주일을 교차 편집으로 엮어내면서, 가족의 보이지 않았던 문제와 그 속에 내재된 갈등과 반목을 밀도있게 그린다.


처음에는 단지 우발적인 사건 속에 진행되는 해프닝과 인간심리에 초점을 맞춘 영화 정도로 생각하게 하더니 살짝 그 뒤로 얽히고 섥힌 문제들을 하나 둘 끄집어내는 식이다.꽤나 무거운 가족관계와 사회전반의 문제는 인과관계가 잘 맞물려 서로 톱니가 물린듯이 궤를 함께 한다. 연출이 세밀하고 섬짓하다. 원인들을 훑으면 훑을수록 가족간의 건조함에 숨이 턱턱막힌다.



이는 분명 한가족사의 문제만을 염두에 둔것 같지는 않다. 보편적 도덕관념과 이성적인 사고의 한계를 벗어나긴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봄직한 일들을 이더욱 불편한 현실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관객은 스스로도 충분히 위태로운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거장 시드니루멧 감독식 드라마의 힘이아닐까.


형 앤디와 동생행크뿐 아니라 아버지와 형의 아내의 관점에서 교차편집되는 시퀀스를 통해 건조한 가족관계와 환경 그 속에 앤디의 원초적인 욕구불만과 분열을 그려낸다. 하지만 애초에 평화롭던 가족의 한순간의 실수와 같은 사건으로 비극이 초래된 것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속해 있으면서도 정작 애정을 나눌수 없었던 그래서 더욱 느슨한 관계, 불편부당한 연결고리안에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없었던 환경이 필연적으로 비극이 초래될수 밖에 없는 인과관계의 핵심이다.


결핍된 가족애와 비극.

비단 한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자본주의의 차갑고, 어두운 가족사회를 정면으로 비추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부모는 보석상을 운영하며, 풍족한 삶을 영위하는 반면 큰 아들은 동생에 대한 부모의 편애를 증오하고, 우유부단하며 유약하기만 한 동생 행크는 금전적인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마치 가족이 아니라 개별적인 가족 즉 세대별로 단절된 모양새다. 애정의 결핍, 서로간의 소원한 관심때문에 결국 작은 사건이 큰 비극의 단초가 되고 만다.


마약에 쩔어 있는 형, 형수와 섹스를 즐기는 동생, 아들보다 아내를 사랑하는 가장의 모습은 분명 막장스런 가족의 진수를 보여준다. 평온하던 가족이 잔혹사의 중심에 서게 된 것도 애초부터 초래될 수 밖에 없는 환경때문이 아니었을까. 결국 행크도 앤디도 행크의 아내도 모두 결핍된 가족애의 피해자인 셈이다. 그저 가족이라는 느슨한 관계의 이름으로만 명맥만 유지되는, 문제투성이의 가족관계는 서로를 더욱 폭력적으로 그리고 억압하고 단절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었을까.


사건과 사건을 구성하는 과정과 결과들이 잔혹한 것이 아니라 환경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사악함이야 말로 비극이고, 지옥인 것이다. 행크는 그 지옥에서 아마도 달콤한 30분의 찬라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댓글 7개:

  1. trackback from: 진중권 교수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를 '시학'으로 풀어냈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진중권 교수와 함께하는 씨네토크 예고편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에단 호크,알버트 피니 / 시드니 루멧



    *주의: 영화의 줄거리가 있을 수 있으니 영화를 보시려는 분은 피해 가시길 바란다.

    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는 아일랜드의 속담으로,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30분 동안이라도 천국에 가 있기를'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까 영화 첫 장면은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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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rackback from: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2007)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감독 시드니 루멧 (2007 / 영국, 미국) 출연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에단 호크, 앨버트 피니, 마리사 토메이 상세보기 ★★★☆☆ 각자의 이유로 돈이 궁한 '전혀 다른 성격의' 형제가 자기 부모의 보석상을 털기로 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 전체 이야기의 중간쯤 되는 부분(모든게 자기 뜻대로 잘 될 줄로만 알고 행복해 하던 순간)에서 시작해서 파편적으로 과거를 회상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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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rackback from: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지난 주에 씨네큐브에서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를 보고 왔다. 씨네큐브는 이 영화를 상영하는 기념으로 The Dark Side Of America라는 기획전도 함께 진행했는데, 이 기획전은 조지 클루니의 Good night and good luck,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 미국 사회의 심연을 잘 보여주고 있는 문제적 수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다른 영화들을 인상깊게 봤던 기억에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도 주저없이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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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rackback from: 우연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사진출처 : Daum 영화정보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감독 시드니 루멧 출연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에단 호크, 엘버트 피니, 마리사 토메이 등 2007. 미국 @ 씨네큐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살아가는 날들은 어쩌면 우연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그런 우연들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시켜내고, 우연이 필연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에 대한 숙제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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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trackback from: Buy amoxicillin online cheap amoxicil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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