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7일 일요일

[님은 먼곳에] 풀리지 않을 의문 ‘님은 먼곳에’


'님은 먼 곳'에 일단 말이 많을 것 같은 영화다. '말이 많을 것'이란 표현은 논란의 여지가 다분할 것이란 의미다. 사유를 많이 하게끔 만드는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은 오랜만에 깊이 사색하는 영화를 만나서 반가울테지만 편히 볼 수 있는 휘발성 대작들에 익숙해진 관객에겐 불친절한 영화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이준익감독이 만든 영화 중에서는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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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의문
가부장적인 시대의 여성 '순이'(수애)는 본인에게 애정이 그다지 없는 남편(엄태웅)을 군에 보내고 매달 마지못해 면회를 가야만 하는 처지다. 집안의 대를 이어야하는 중차대한 책임만을 종용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더욱 어깨가 무겁기만 하다. 더군다나 남편의 마음은 순이가 아닌 여인에게 가있고, 현실의 책임마저 순이 본인이 떠안아야 하는 불운한 상황이다. 그래서 시어머니의 홀대도 참아내야 하고, 남편이 애인과의 이별로 머나먼 베트남행을 선택한 것에 대한 질책 역시 마냥 감내해야 하는 처지다. 여기까지만 이견이 없을 줄거리다.


영화는 이후부터 펼쳐지는 상황에 대한 모든 것을 철저하게 관객에게 떠넘겨 버린다. 요컨데 왜 순이는 남편을 찾아 베트남으로 향했는지 무엇이 순이로 하여금 억척스레 전장의 한가운데로 자신을 내던야했는지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순박한 시골처녀 순이가 위문공연밴드의 씽어 '써니'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본인의 모습에 열광하는 군인들로 삶의 위안과 존재감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갖가지 상상을 할 수 있는 정황들만 영화 곳곳에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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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화는 매력적이다. 순이가 과연 운명적인 만남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영화가 끝나면 이미 다른 의문으로 변해 있다. 앞서 주어진 정황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고 퍼즐을 맞추듯 유추하는 재미가 바로 관객의 몫인 셈이다. 한가지 권하고 싶은 것은 꼭 주변의 여성과 영화를 보고 순이의 심리상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전쟁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
이준익 감독이 상상하는 1971년의 베트남은 기존에 전쟁영화에서 그려졌던 풍경과는 다소 다르다. 전쟁 속의 참혹함, 전장의 급박하고 건조한 상황을 최대한 현실감 있게 담아낸 것은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단순히 우군과 적군,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전쟁에 참여한 대상을 양분하는 시선은 철저하게 피하고 있다. 베트콩을 바라보는 시선은 헐리웃 영화들의 반드시 때려잡아야 할 악의 대상이 아니라 전쟁의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순박한 눈을 가진 동일한 인간일 뿐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직접참여한 군인보다는 주변의 간접체험자가 필요했고 남성 보다는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순이의 눈에 담겨진 전쟁은 그래서 색다르면서도 공평하다.


영화 최고 미덕은 음악.
영화 내부적으로 또 하나의 미덕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영화음악을 꼽는다. 음악으로 시작한 영화는 음악으로 그 끝을 맺는다. 하나같이 절절이 와 닿지 않는 노래가 없다. 이준익 감독은 시사회에서 30년전에 부모님 세대들에서 유행한 좋은 음악들이 묻혀가는 것이 아쉬웠고 당시의 문화를 지금같이 즐기면서 세대간의 단절을 봉합시키고 싶은 마음에서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곳에 모두 70-80년대 음악을 사용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가장 축이 되는 음악은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 애잔하게 울려퍼지는 '님은 먼곳에'는 피부가 찌릿할 정도의 전율을 가져다 준다. 구슬프기도 하고 때론 공포에 젖어 있기도 한다. 한 없는 안정감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 밖에 순이가 부르는 노래들 '간다고 하지마오','울릉도 트위스트' , '수지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수애라는 배우의 캐릭터를 살리는 적절한 노래들이다. 그 표정 안에 다양한 변화를 담아낸 수애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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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힘들게 도착한 마지막 시퀀스가 영화를 보고 꽤 오래 지난 지금까지 맴돈다. 그 만큼 여운이 깊다. 남성분들이라면 꼭 여성분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영화다. 나머지 배우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제 위치에서 영화를 살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영화를 감명 깊게 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수애가 부른 '님은 먼곳에'를 인터넷에서 뒤적거릴 것이고 노래의 가사를 음미하며 영화를 다시 떠올려 볼 것이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 한편이 반가운 하루다.




댓글 4개:

  1. 어라;;

    포스팅과 관련없는 댓글입니다만;;

    원래 영화 블로그 하셨어요? 아주 예전에 한번 와본거 같은데 그때랑 다른듯한;;



    아, 토요일날 정말 수고하셨어요!

    덕분에 잘 진행된거 같다는+_+/

    암튼 즐건 한주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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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토요일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ㅎㅎ;;



    감기 안걸리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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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라비 - 2009/05/18 21:59
    원래 영화 블로그 한건 아니구요. 이번에 새로 카테고리를 하나 빼냈습니다.^^



    세라비님도 토요일날 고생많으셨어요. 감기 안걸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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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Arone - 2009/05/18 23:30
    안녕하세요. Arone님도 토욜날 정말 수고많으셨어요. 우산을 쓰고 있어서 비를 많이 많진 않았어요. 감기는 안걸렸구요. 일요일날 시체처럼 누워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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