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소재로 한 영화, 특히나 피가 튀기고 인육이 갈기갈기 뜯겨져 나가는 식의 영화는 보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허구인 것을 인지하면서도 그 생생한 표현이 영화 후에도 각인되어 머릿 속에 오랫동안 맴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트를 보게 된 것은 공포를 소재로한 영화라는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스트를 단순히 입을 양손으로 가려가면서 봐야 할 공포영화의 범주에만 국한시켜 버리기에는 그 전달의 메세지가 너무나 강하다.
# 공포의 시작
극적 상황을 조성하고 관객을 그 상황안에 몰입시키는 방법은 여타의 공포영화에서처럼 평범하다. 대형마트라는 공간안에 사람들을 일단 가두어 놓고 시작한다. 하지만 다른 장르적 영화에서처럼 그 공간은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공포의 공간이거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탈출해야 할 공간이 아니라 자유의사에 의해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 다가올 공포가 빠져나가야 할 공간인 마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개(미스트)가 점령한 대형마트의 문 밖 세상에 존재하는 것임을 알게 된 후, 밀폐된 공간에 갇힌 사람들은 고립된채 사태의 추이를 지켜 봐야만 하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나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그들의 반목과 갈등 그리고 공포가 비로소 시작된다.
# 미스트 속의 인간사회 - 권력, 선동, 종교, 그리고 인간본성이 뒤범벅 된 영화
단절되고 밀폐된 마트 안은 비교적 평화로움을 유지해가지만, 상황은 오래 가지 못한다. 안개가 자욱한 바깥 세상의 위험한 실체(?)를 알게 된 데이빗에 의해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허황된 현실 거짓같은 상황을 전혀 믿지 않던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안개 속 실체를 인정하고 마트내에 남아야 한다는 부류와 공포의 실체는 거짓이며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의 의견이 상호 충돌할 때 쯤 이를 대표하는 두 정치적 세력(데이빗과 노튼)간의 대립도 첨예해져 간다.

그 좁은 공간 안에서 하나의 축소된 사회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노튼과 소송문제로 반목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은 단순한 대립의 차원을 넘어서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을 야기시킨다. 결국 노튼은 본인 권력의 반대급부에 서 있는 데이빗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안개속 실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위험한 세상으로 뛰어 든다. 결국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신으로 똘똘 뭉쳐진 노튼(변호사)이 그 실체의 희생자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데이빗을 중심으로 그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한다.
시시각각 조여오는 공포와 불안 속에서 대형마트 속의 인간들은 점점 나약해져간다. 이를 틈타 미치광이 종교신자정도로만 여겨지던 카모디가 나약한 내면적 불안속에서 안식을 갈망하는 자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힘을 결집시켜 나간다. 그녀는 그 힘을 빌어 사람들을 선동하고 안개 속 공포의 세상으로부터 구원 받기 위한 재물만이 살길임을 설파하고 이를 통해서 교주로 추대된다. 사람들 내면속의 공포와 불안은 인간의 본성을 무기력하게 그리고 폭력적으로 변모시키고, 종교에 기댄 비이성적인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공포로 다가온다.
# 관객들에 대한 조롱 - 결국 당신이 틀렸다.
영화를 보고 나온 많은 사람들은 허탈함을 감출 수 없다. 영화가 재미 없어서가 아니라 허탈한 결말과 그 뒤에 벌어질 주인공의 삶이 상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단한 리더쉽으로 안개 속의 위험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노력한 주인공을 비웃기라도 하듯 군용 트럭 구출된 무리들 속 한 여인(영화 초반 도움을 외치며 유유히 안개속으로 뛰쳐 나갔던 두아이의 어머니)의 시선과 교차한 후 괴성을 지르는 장면은 가희 영화의 압권이다. 관객들을 조롱하듯 반전이상의 울림을 주는 장면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해결이 될 상황들, 즉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버린듯한 장면 속, 씁쓸한 울림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익을 위해 정치적 세력들이 행한 일들이 안개 속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이것이 살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외치는 리더들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인간을 둘러싼 사회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정치도 어쩌면 우리가 쳐놓은 안개 속에서의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사람들을 선동하고 현실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종교에 기대어 본들, 인간은 벗어날수 없는 굴레를 등에 진 나약한 존재라는 것, 그래서 스스로 평온한 삶을 영위 할 수 있음에도 오히려 고난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영화가 끝이나고서도 내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결국 나도 그 안개 속의 제한된 삶에서 발버둥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 모두가 틀렸다는 것을 관객스스로 느끼게 되기 때문에 더욱 더 허무한 영화다. 머 이것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비웃어도 할말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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