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1일 월요일

[박쥐] 인간의 욕망과 나약함을 비트는 박쥐.



4월 30일 이미 개봉에 맞춰 박쥐를 본 사람들의 반응들을 살피고 극장을 찾은 탓일까. 놀라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느낌이 우선 밀려왔다. 대게 영화를 보고 나면 머리 속에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과 느낌이 묻어 나오기 마련인데, 박쥐만큼은 어지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의 스토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듯하면서도 난해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영화 속에 표현된 몇몇 배우의 표정들이 영화가 끝나고도 내내 잊혀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박쥐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인 듯 하다. 뱀파이어 그리고 종교. 여기에 한가지 더 보태자면 인간의 욕망과 믿음, 이를 둘러싼 인간들의 내면에 투영된 모습들을 오밀조밀하게 비춘다.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영화치고는 매우 무겁고 섬뜩한 장면들이 펼쳐진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불친절한 편집도 군더더기 없는 전개에 속도와 흥미를 더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 이하의 영화에 혹평을 더하고 있고, 영화가 종료된 후 관객들의 반응도 냉담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뱀파이어라는 상투적인 소재를 가지고, 인간의 욕망 가운데 내재된 다양한 심리들을 끄집어 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평가를 해주고 싶은 영화다.


초반에 극 전개에 대해서는 박찬욱 감독의 기존영화에서 줄기차게 표현된 복수코드의 연장선상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었지만, 반전을 통한 전개등을 미루어 짐작컨데, 복수와 거리가 먼 캐릭터의 변화무쌍함 정도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많은 언론에서 기사화 된 송강호의 노출신과 김해숙(태주 시어머니 역)의 잊혀지지 않는 표정(머리가 쭈뼛할 정도), 그리고 박인환(노신부 역)의 연기다. 물론 때론 귀엽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며, 어리숙하지만 팜므파탈적인 모습을 천역덕스럽게 표현해 낸 김옥빈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박찬욱 감독이 비틀고자 한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죽음 앞에서 죄를 사하고, 인도받기를 원하는 인간의 나약함, 신에 대한 믿음은, 본능 속에 억제된 쾌락과 욕망이 쉽게 깨어지는 유리와도 같음을 보여준다. 결국 인간의 욕망은 나약함 앞에 한 없이 깨어질 수 밖에 없는 인간본성의 한 단면인 셈이다. 박쥐를 통해 이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감독특유의 재치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결말이 꽤나 유쾌하다. 유쾌하다는 표현보다는 익살 맞다. 욕망의 종착역은 결국 빛 앞에 흩어지는 먼지와 같다. 어둠이 걷히고, 여명 끝에 흩어지고 사라지는 욕망은 결국 인간본성이 돌아갈 곳이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어지러움 속에, 긴 여운이 남는 것도 나약함 속에 오랜 잔상으로 남아있는 영화 곳곳의 헛된 욕망 때문이 아닐런지.




댓글 9개:

  1. 전 박감독의 복수시르즈 아주 재미있게 봤는데 이 영화는 복수란 선하고는 상관없는 영화로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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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rackback from: 박쥐, 박찬욱의 Thirst를 말하다.
    복수 시리즈라고 불린 박찬욱 감독의 영화 세편은 모두 하나같이 무겁다.  해학이나 사회에 대한 조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보다는 인간 개개인의 심리, 그 깊은 곳까지 무겁게 파고드는데 그 초점을 두고 있다. 영화 박쥐 역시 그 무거움의 연장선상에 머무르고 있다. 성직자라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에서 초탈해야 하는 자가 병으로 뱀파이어가 되어 욕망을 갈구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성직자의 그러한 욕망을 이용하여 자신의 복수를 이뤄내는 여자. 이 두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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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lueshine - 2009/05/12 07:11
    Blueshine님. 안녕하세요. 저도 복수코드일지가 궁금했었는데요. 결국 반전을 통해서 그건 아니라는 결론을 얻을수가 있더라구요. 주변에 여러번 보신분들이 있으신데 저도 한번쯤은 더보고 싶은 그런 영화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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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rackback from: [영화] 박쥐 (2009, 박찬욱)_희고 붉은 김옥빈을 기억하게 될 영화
    박쥐 - 박찬욱 병원에서 근무하는 신부 ‘상현’은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괴로워 하다가 해외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백신개발 실험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실험 도중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음에 이르고,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 받아 기적적으로 소생한다. 하지만 그 피는 상현을 뱀파이어로 만들어버렸다. 피를 원하는 육체적 욕구와 살인을 원치 않는 신앙심의 충돌은 상현을 짓누르지만 피를 먹지 않고 그는 살 수가 없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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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트랙백 타고 왔습니다.

    리뷰 잘 보고 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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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shinsee - 2009/05/12 15:41
    네...^^ 리뷰속에 공감하는 내용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 저도 리뷰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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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trackback from: 욕망의 윤무곡, 영화 박쥐
    박찬욱식의 JNSC은 항상 나에게 잘먹힌다. 복수는 나의것에서 보여준 분노는 치가 떨릴 정도였고, 이금자의 구원을 향한 열망은 성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박쥐에서 보여준 욕망의 노예 김옥빈은, 대한민국 신상 비치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덤으로 찍어먹을 송강호 고추와 함께. 박쥐 갈구하고 갈구하며 또 다시 갈구한다. 욕정은 서로를 탐하게 만들고, 탐욕은 욕망 자체를 갈구하게 된다. 태주의 욕망은 끊임없고 정도가 없으며, 핏자국 처럼 선명하게 물들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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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trackback from: [영화리뷰] 박찬욱 감독 '박쥐'
    'Thirst' charts a new course for vampire films By Yang Sung-jin Published on The Korea Herald: April 27, 2009 "Thirst," directed by Park Chan-wook, is deeply provocative in various aspects. But those who expect the extreme cinematic pyrotechnics seen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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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trackback from: [박쥐] 칸 영화제서 심사위원상 수상 !
    독일 칸에서 낭보가 도착했습니다. 박쥐의 박찬욱 감독님이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입니다. 박찬욱 감독님은 "제가 아는 것이라곤 창작의 즐거움뿐이다. 첫 영화가 실패한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영화를 못 찍었는데 세번째 영화를 찍고 나서부터는 영화를 찍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언제나 행복했다. 영화의 마지막 단계가 칸영화제인 것 같다. 형제나 다름 없는 정다운 친구이자 최상의 동료인 배우 송강호씨와 이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다" 라는 수상소감을 남기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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