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7일 수요일

[보이 A] 오해와 편견이라는 사회적 폭력의 무서움.


보이 A는 폭력에 대한 영화다. 몸에 피멍이 들고, 살이 찢겨 나가게 만드는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서서히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잔인함에 대한 기록이다.

영화는 10세의 어린나이에 친구와 함께 우발적으로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14년의 교정기간을 거쳐 사회로 돌아왔을 때 내 주변에 그를 들여 놓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작은 물음으로 시작한다. 물론 씻을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반성, 속죄의 마음들. 어두운 과거를 딛고 새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한 젊은이의 노력과 꿈을 장시간 풀어 놓는다.


잊고 싶은 기억, 씻고 싶은 과거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에릭은 잭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새출발한다.  마음 한구석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듯 악몽에 시달리는 날들이 이어지지만 보호 감찰사 테리의 도움으로 새로운 직장과 친구, 애인까지 생기게 되면서 잭의 일상은 평탄하게 흘러간다. 운 좋게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아이를 구출하면서 지방신문에 대서특필되며 영웅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하지만 늘 가슴 한구석 낙인 찍힌 범죄자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 슬픈이름, 살인마 에릭을 사회적 오해와 편견이라는 폭력의 한가운데로 몰아 넣는다.

<보이 A>는 영국 범죄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슬픈 사건으로 기록된 <제임스 버거> 사건을 통해 제기된 영국의 소년범죄 문제를 다룬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한다. 속죄와 용서라는 큰 틀 안에 소년범죄자들을 바라보는 영국사회의 편견과 오해들을 정면으로 고발하고 있는데, 영화 속 재판과정에서 검사가 배심원을 향해 내뱉는 독설은 사회가 소년범죄자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표현하고 있다.

소년범죄자에게 중형을 내려야 하는 이유는 이들을 교정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을 악(devil)으로 부터 보호하고, 격리하기 위함이다.

존 크로울리 감독은 이러한 편견을 우회적으로 반박하기 위해서 영화 속 잭의 일상 속에 과거를 교차 편집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어머니가 암투병 중이고, 담배에 쩔어 지내는 아버지는 애정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 볼래야 볼수 없다. 무관심,애정결핍으로 일그러진 잭의 유년기는 늘 외롭기만 하다. 끔찍한 살인의 주도적인 실행자인 잭의 친구, 필립 역시 형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올바른 인성과 가치관이 채 성립되기 전에 겪어야할 문제들을 보듬어 줄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과론적인 범죄행위의 사실관계에 입각해서 범죄의 경중을 판단하는 영국사회의 슬픈 단면이 영화 속에 들어있다. 이는 비단 영국사회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 우리사회의 현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공감이 간다.

잭이 새로운 삶에 정착할 수 있도록 그토록 온정을 쏟아 붓는 보호감찰사 테리 역시 아들에게는 온전한 애정을 베풀지 않는다. 
테리의 아들은 관심과 사랑을 누리지 못해 무기력한 삶, 방황하고 저항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캐릭터로 그려지면서 소외받는 청소년의 슬픈 현실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듯 하다. 사실 이부분이 아이러니 한 부분이긴 하는데, 우리가 범죄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외치지만 정작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대상을 돌아보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지를 우회적으로 꼬집는 듯 느껴졌다.

살인자 에릭이 다시 살기 위해 선택한 이름 잭은 결국 지워지지 않는 슬픈 이름으로 돌아오고 만다. 약자를 구원하지 못하고, 보호해야 할 이름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오해와 편견은 분명 거대한 사회적 폭력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쳐 놓은 울타리 안의 무관심 그리고 그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받는 우리현실의 가장 슬프고도 처연한 이름이 바로 보이 A다.



1. 잭버리지 역의 앤드류가필드는 표정 속에 천진난만함과 불안함, 혼돈과 분노를 차례로 녹여내는 재주가 돋보인다.

2. 실제 영화는 1993년 영국을 흔들었던 <제임스 버거>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3. 시네아트 광화문에서의 관람은 언제나 영화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관객들이 많아서 즐겁다. 어떤 영화든 엔딩크레딧 이후 자막이 모두 올라가기 전에 자리를 뜨는 관객이 단 한명도 없었다.


4."절 구해주셔서 감사드려요.아저씨는 칼을 든 천사에요." 라는 편지 부분은 특히나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댓글 3개:

  1. trackback from: 비트손의 생각
    [보이 A] 오해와 편견이라는 사회적 폭력의 무서움. 괜찮은 영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인 장치들이 오히려 음지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답글삭제
  2. 요즘 집중할 수가 없어서 못보고 있는데, 저도 어서 보고 싶네요;;;

    답글삭제
  3. @아쉬타카 - 2009/05/27 10:28
    어서 안정을 찾으시고 예전의 왕성한 리뷰활동하셨으면 좋겠네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