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3일 수요일

[미스트] 가장 나약한 존재인 인간의 본질적인 공포.


공포를 소재로 한 영화, 특히나 피가 튀기고 인육이 갈기갈기 뜯겨져 나가는 식의 영화는 보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허구인 것을 인지하면서도 그 생생한 표현이 영화 후에도 각인되어 머릿 속에 오랫동안 맴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트를 보게 된 것은 공포를 소재로한 영화라는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스트를 단순히 입을 양손으로 가려가면서 봐야 할 공포영화의 범주에만 국한시켜 버리기에는 그 전달의 메세지가 너무나 강하다.

# 공포의 시작
극적 상황을 조성하고 관객을 그 상황안에  몰입시키는 방법은 여타의 공포영화에서처럼 평범하다. 대형마트라는 공간안에 사람들을 일단 가두어 놓고 시작한다. 하지만 다른 장르적 영화에서처럼 그 공간은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공포의 공간이거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탈출해야 할 공간이 아니라 자유의사에 의해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 다가올 공포가 빠져나가야 할 공간인 마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개(미스트)가 점령한 대형마트의 문 밖 세상에 존재하는 것임을 알게 된 후, 밀폐된 공간에 갇힌 사람들은 고립된채 사태의 추이를 지켜 봐야만 하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나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그들의 반목과 갈등 그리고 공포가 비로소 시작된다.

# 미스트 속의 인간사회 - 권력, 선동, 종교, 그리고 인간본성이 뒤범벅 된 영화
단절되고 밀폐된 마트 안은 비교적 평화로움을 유지해가지만, 상황은 오래 가지 못한다. 안개가 자욱한 바깥 세상의 위험한 실체(?)를 알게 된 데이빗에 의해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허황된 현실 거짓같은 상황을 전혀 믿지 않던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안개 속 실체를 인정하고 마트내에 남아야 한다는 부류와 공포의 실체는 거짓이며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의 의견이 상호 충돌할 때 쯤 이를 대표하는 두 정치적 세력(데이빗과 노튼)간의 대립도 첨예해져 간다.


그 좁은 공간 안에서 하나의 축소된 사회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노튼과 소송문제로 반목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은 단순한 대립의 차원을 넘어서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을 야기시킨다. 결국 노튼은 본인 권력의 반대급부에 서 있는 데이빗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안개속 실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위험한 세상으로  뛰어 든다. 결국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신으로 똘똘 뭉쳐진 노튼(변호사)이 그 실체의 희생자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데이빗을 중심으로 그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한다. 

시시각각 조여오는 공포와 불안 속에서 대형마트 속의 인간들은 점점 나약해져간다. 이를 틈타 미치광이 종교신자정도로만 여겨지던 카모디가 나약한 내면적 불안속에서  안식을 갈망하는 자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힘을 결집시켜 나간다. 그녀는 그 힘을 빌어 사람들을 선동하고 안개 속 공포의 세상으로부터 구원 받기 위한 재물만이 살길임을 설파하고 이를 통해서 교주로 추대된다. 사람들 내면속의 공포와 불안은 인간의 본성을 무기력하게 그리고 폭력적으로 변모시키고, 종교에 기댄 비이성적인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공포로 다가온다.

# 관객들에 대한 조롱 - 결국 당신이 틀렸다.
영화를 보고 나온 많은 사람들은 허탈함을 감출 수 없다. 영화가 재미 없어서가 아니라 허탈한 결말과 그 뒤에 벌어질  주인공의 삶이 상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단한 리더쉽으로 안개 속의 위험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노력한 주인공을 비웃기라도 하듯 군용 트럭 구출된 무리들 속 한 여인(영화 초반 도움을 외치며 유유히 안개속으로 뛰쳐 나갔던 두아이의 어머니)의 시선과 교차한 후  괴성을 지르는 장면은 가희 영화의  압권이다. 관객들을 조롱하듯 반전이상의 울림을 주는 장면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해결이 될 상황들, 즉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버린듯한 장면 속, 씁쓸한  울림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익을 위해 정치적 세력들이 행한 일들이 안개 속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이것이 살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외치는 리더들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인간을 둘러싼 사회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정치도 어쩌면 우리가 쳐놓은 안개 속에서의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사람들을 선동하고 현실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종교에 기대어 본들, 인간은 벗어날수 없는 굴레를 등에 진 나약한 존재라는 것, 그래서 스스로 평온한 삶을 영위 할 수 있음에도 오히려 고난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영화가 끝이나고서도 내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결국 나도 그 안개 속의 제한된 삶에서 발버둥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 모두가 틀렸다는 것을 관객스스로 느끼게 되기 때문에 더욱 더 허무한 영화다. 머 이것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비웃어도 할말은 없지만.


영화 사상 최고의 적수, 맞대결 TOP5

영화에서는 수 많은 적수들이 격돌한다. 갈등과 반목, 질투와 시기가 엇갈린 라이벌이 있는 반면에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대도 있다.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에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맞수도 있다. 여지껏 감상한 영화 중 최고의 적수들 TOP5를 선정해봤다.

# 5위 : 쳡혈쌍웅

아쏭(주윤발) VS 이응( 이수현)


첩혈쌍웅은 1989년작으로 오우삼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다. 대부분 홍콩 느와르의 최고 걸작으로 영웅본색으로 꼽지만 개인적으로 첩혈쌍웅을 한 수 위라 말하고 싶다. 쌍권총과 휘날리는 바바리코트도 여전하고 비둘기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화력은 영웅본색을 압도할 정도다.


아쏭(주윤발) 과 이응(이수현)은 킬러와 경찰로 쫓고 쫓기는 서로간의 적수이지만 결국 찐한 동료가 되는 사이로 변한다. 둘을 최고의 적수라고 꼽는 이유는 적이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들을 통해 사나이들만 공유할 수 있는 끈끈한 우정을 담아 냈기 때문이다.


# 4위 : 3:10 투 유마

밴웨이드(러셀크로우) VS 댄 에반스(크리스찬베일)


철 지난 서부영화쯤으로 생각하고 감상한 영화가 대박인 경우다. 사실 러셀크로우나 크리스찬베일의 연기를 하나의 스크린에서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인 영화다. 영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3:10 투 유마는 3시 10분 유마행으로 향하는 기차에 범죄자 벤웨이드(러셀크로우)를 호송하기 위한 댄에반스(크리스찬베일)의 여정을 다룬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기존의 서부영화들이 취해왔던 선과 악의 구분자체를 조롱하듯 모호하게 뒤집어 버리는 영화적 설정이지만 긴장감이 느슨하거나 흥미가 반감하지 않게 풀어낸다. 두 적수의 대립관계와 그 속에 그려내는 부성애, 이에 동화되는 악인의 심리묘사가 꽤나 매력적이다. 색다른 서부 활극을 원한다면 3:10 투유마를 선택해도 좋다.


# 3위 : 친구

준석 (유오성) VS 동수(장동건)


2001년 한국은 그야말로 친구 돌풍에 휩싸였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가 이렇게 파란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예측 못했을 것이다. 2001년 3월 31에 개봉한 친구는 2,579,950명을 극장으로 불러 들이며 같은 해에 개봉한 엽기적인 그녀를 8만여명차로 따돌리며 2001년 의 최고흥행작에 등극한다.


"니가가라 하아이", "고마해라 마이무따 아이가"등의 대사는 각종 패러디로 만들어질 정도로 영화 친구의 흥행은 거침없었다. 오래 두고 사귄 벗, 함께 있을 때 두려울 것이 없는 친구사이인 준석과 동수지만 서로에게 칼을 겨누어야 하는 적이 되는 순간 둘은 더이상 우정어린 사이가 아니다. 준석에 대한 열등감, 친구에 대한 배신감과 반목들을 잘 표현한 유오성과 장동건을 최고의 위치로 끌어준 영화 친구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다.


# 2위 : 무간도

진영인(양조위) vs 유건명(유덕화)


2002년 명맥을 겨우 이어가던 홍콩 느와르에 걸작이 한편 탄생한다. 유위강 감독의 무간도. 와이어가 난무하고 천편 일륜적인 스토리에 식상해 있을 홍콩영화매니아들에게 치열한 두뇌싸움, 심리전으로 색다른 신선함을 안겨준다. 홍콩경찰의 비밀 경찰신분으로 삼합회에 잠입한 진영인(양조위)과 반대로 삼합회 소속이면서 조직원을 위한 스파이로 홍콩경찰에 잠입하여 활약하는 유건명(유덕화)의 심리 대결이 압권이다.


진영인은 10년 동안의 삼합회 조직원 생활을 청산하고 떳떳한 경찰 신분을 되찾길 바라고 유건명은 조직의 보스를 제거해 가면서까지 안정된 경찰신분 속에 신분상승을 꿈꾼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둘은 서로 가장 위험한 적인 동시에 서로의 아픔을 누구보다 공감하는 동지다.


주연, 조연할 것 없이 적절한 캐스팅과 각본과 시나리오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까지 삼박자를 두루 갖춘 영화다. 속편, 3편도 흥행을 이어가며 헐리웃으로 넘어간 판권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잭니콜슨의 "디파티드"로 리메이크 되지만 원작의 발끝도 못 쫓아가는 느낌만 줄 뿐이다.


# 1위 : 다크나이트

배트맨(크리스찬 베일) VS 조커(히스레져)


슈퍼히어로물을 가장한 범죄스릴러. 아니 범죄스릴러를 가장한 장르영화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다크나이트를 내가 본 영화 중 최고의 적수가 등장하는 영화 1위로 꼽는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고인이 된 히스레져에게 경의를 표한다.


선 과 악의 대결에 항상 선의 입장에 치우쳐 있던 헐리웃의 세계관을 조롱하듯 선과 악 둘 사이의 팽팽한 대립과 대결을 촘촘히 심어 놓는다.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미묘한 차이일 뿐, 운명은 이런 선악을 구분 짓는 것처럼 무모한 것임을 수 차례 보여주려 애쓴다.


배트맨은 가장 인간에 가까운 히어로로써 완벽하지 않아 더욱 빛나고 조커는 순수악 그 자체로 섬뜩함과 아찔함을 함께 표현한다. 그래서 둘의 격돌은 치우침 없이 팽팽한 평행선을 그린다. 슈퍼히어로물을 통틀어 이처럼 적수다운 맞대결을 펼친 적이 있었을까. 감히 배트맨과 조커의 영화 속 대결을 최고라 말하고 싶다.


2009년 5월 12일 화요일

[7급 공무원] 제목이 아쉬운 영화.


4월~5월 들어 극장가에 헐리웃 영화들과 대적할만한 영화들이 내걸리고 있다. 애초부터 관심을 모았던 박쥐는 예상대로 흥행1위를 달리고 있고, 그 뒤를 뒤쫓는 한국영화 한편이 있다. 7급 공무원. 사실상 이영화의 경우 개인적으로 예매 우선순위에서 줄곧 밀려 있었다.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자칫 진부한 이류나 삼류 코미디물 정도 쯤에 머물 것이란 예측에서였다.


그 동안 한국영화는 될법한 영화들, 흥행이 될만한 소재들만 긁어 모아서 영화를 만드는 이른바 흥행보증수표급 영화들을 양산해내는데 급급한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제작 풍토에 식상한 관객들은 조폭영화, 뻔한 애정물들을 외면하면서 한국영화에 대한 거품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고, 극장가는 깊은 불황의 늪에 허덕이기도 했다.


7급 공무원이 그런 전례에 사례를 하나 더보태주는 격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한국영화치고는 조금 독특한 소재일지 모르겠지만, 어디서 많이 본 영화, 연상되는 영화가 몇몇 있을 정도로 새롭지 않은 영화다. 첩보물이면서 7급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이유가 극 종반에 가서야 이해가 될 정도로 제목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유쾌하고 즐겁다.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되는, 눈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한 영화다. 다양한 액션신을 소화해내는데 상당히 힘겨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김하늘의 액션은 크고 웅장하다. 하지만 설정자체가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식 좌충우돌의 스토리를 차용한 듯 하고, 의식적으로 패러디임을 보여주고 한 것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미션임파서블의 익숙하고 뻔한 반전시퀀스도 새롭지 않고 진부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어리숙한 강지환의 몸짓도 소비적이다.


큰 웃음보다는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이 꽤나 많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즐거움이 장기인 영화다. 지인 중에 한 명은 오히려 과속스캔들의 유쾌함보다 한 수 위라는 호평을 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취향상의 평가인듯하다. 개봉 이후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만난 것이 7급 공무원의 가장 큰 불행이 아닐까.


류승룡, 강신일, 장영남 등 굵직한 조연들의 후광도 영화를 뒷받침한다. 강지환과 류승룡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웃다가 극장을 나올 수 있었다. 벌써부터 속편을 기대하는 글들도 간간히 보인다. 만일 속편이 나오게 되면 연재물의 제목은 6급…5급….4급 공무원이 될까. 과연 속편을 염두에 두고 영화제목을 지었던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휩싸이게 하는 영화. 7급공무원은 유쾌하지만 뭔가 2%정도 부족한 중박 정도의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비트] 추억의 영화 비트 (Beat 1997)



"나에게 꿈은 없었다." 정우성의 나즈막한 나레이션으로 박동하는 젊음의 영화 '비트'는 시작된다.


대학시절(97년)시절 본 영화 한편이 아직 마음 깊이 남아있다. 김성수 감독, 정우성, 고소영 주연의 비트. 사실 만화가 허영만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지금은 식객, 타짜 등 허영만 원작의 만화들이 빈번하게 극장에 걸리긴 하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례였다.


'젊음'이라는 코드, 질풍노도의 반항적이고 거침없는 일탈을 스타일리쉬하게 그려냈고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캐릭터를 묵묵하게(?) 소화해낸 정우성의 초기작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무명 정우성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 놓은 역작인 비트는 아쉽게도 김성수감독의 마지막 흥행작이 되고 만다.

말보로 담배와 지포라이터는 반항의 아이콘이 되었고 편곡된 비틀즈의 Let'it Be는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흥얼거릴 정도로 익숙한 노래가 되었다. 탈줄 모르는 오토바이에 대한 전문잡지를 정기구독하게 만들었던 비트. 김부용의 특유의 컬컬한 목소리가 담긴 비트 주제곡은 나의 18번이 될 정도로 영화 비트의 매니아가 되었다.


정우성의 상대는 고소영이 맡았고 유오성과 임창정도 이 영화로 이름을 알렸다. 특히나 단역을 주로 맡았던 임창정이 엑스트라 인생에 종지부를 찍고 오늘날의 임창정으로 거듭나게 해준 영화 역시 다름아닌 '비트'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와 같은 학원 액션영화의 원조격인 영화가 비트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Beat 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박동하다' , '두드리다' 정도가 나온다. 일탈을 꿈꾸는 젊음을 표현하는 단어다.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고 싶었지만, 삶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무미건조한 젊음이지만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두드리는 청춘의 모습이 내 모습인양 측은해 더욱 공감이 갔던 영화다.



정우성은 비트이후에도 늘 비트속의 '이민'(극중배역)으로 살아간다. 본인의 굳어진 캐릭터를 단번에 깨뜨리기 위한 노력이 엿보였던 '똥개' 이전까지 후속작들 모두 이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영화의 흥행덕택에 정우성과 고소영은 '러브'라는 멜로물로 다시 호흡을 맞춘다. 비트에 비해선 비중있는 대사들이 제법 많았지만 전작의 이미지가 고스란이 남아있는 마라토너 정우성은 비트만큼의 임팩트를 주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정우성이란 배우에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연기력의 한결같음은 늘 아쉽기만 하다.


2009년 5월 11일 월요일

[박쥐] 인간의 욕망과 나약함을 비트는 박쥐.



4월 30일 이미 개봉에 맞춰 박쥐를 본 사람들의 반응들을 살피고 극장을 찾은 탓일까. 놀라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느낌이 우선 밀려왔다. 대게 영화를 보고 나면 머리 속에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과 느낌이 묻어 나오기 마련인데, 박쥐만큼은 어지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의 스토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듯하면서도 난해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영화 속에 표현된 몇몇 배우의 표정들이 영화가 끝나고도 내내 잊혀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박쥐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인 듯 하다. 뱀파이어 그리고 종교. 여기에 한가지 더 보태자면 인간의 욕망과 믿음, 이를 둘러싼 인간들의 내면에 투영된 모습들을 오밀조밀하게 비춘다.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영화치고는 매우 무겁고 섬뜩한 장면들이 펼쳐진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불친절한 편집도 군더더기 없는 전개에 속도와 흥미를 더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 이하의 영화에 혹평을 더하고 있고, 영화가 종료된 후 관객들의 반응도 냉담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뱀파이어라는 상투적인 소재를 가지고, 인간의 욕망 가운데 내재된 다양한 심리들을 끄집어 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평가를 해주고 싶은 영화다.


초반에 극 전개에 대해서는 박찬욱 감독의 기존영화에서 줄기차게 표현된 복수코드의 연장선상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었지만, 반전을 통한 전개등을 미루어 짐작컨데, 복수와 거리가 먼 캐릭터의 변화무쌍함 정도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많은 언론에서 기사화 된 송강호의 노출신과 김해숙(태주 시어머니 역)의 잊혀지지 않는 표정(머리가 쭈뼛할 정도), 그리고 박인환(노신부 역)의 연기다. 물론 때론 귀엽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며, 어리숙하지만 팜므파탈적인 모습을 천역덕스럽게 표현해 낸 김옥빈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박찬욱 감독이 비틀고자 한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죽음 앞에서 죄를 사하고, 인도받기를 원하는 인간의 나약함, 신에 대한 믿음은, 본능 속에 억제된 쾌락과 욕망이 쉽게 깨어지는 유리와도 같음을 보여준다. 결국 인간의 욕망은 나약함 앞에 한 없이 깨어질 수 밖에 없는 인간본성의 한 단면인 셈이다. 박쥐를 통해 이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감독특유의 재치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결말이 꽤나 유쾌하다. 유쾌하다는 표현보다는 익살 맞다. 욕망의 종착역은 결국 빛 앞에 흩어지는 먼지와 같다. 어둠이 걷히고, 여명 끝에 흩어지고 사라지는 욕망은 결국 인간본성이 돌아갈 곳이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어지러움 속에, 긴 여운이 남는 것도 나약함 속에 오랜 잔상으로 남아있는 영화 곳곳의 헛된 욕망 때문이 아닐런지.




[피스트오브러브 단평]어른들의 사랑이라는 성장통.




피스트오브러브는 사랑에 관한 영화다. 잔잔하지만 흡입력 있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모건프리먼의 캐릭터는 영화마다 비슷한 느낌이다. 좀처럼 변함이 없다. 대게 안온하고 넉넉한 이미지. 피스트오브러브에서도 전작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럼에도 식상하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 건 배역에 스며든 그의 연륜 때문이다.


영화는 지역 대학교수인 해리스티븐슨(모건프리먼)의 시선에서 관찰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다룬다. 사랑은 4가지 형태의 각기 다른 모습으로 얽혀 있다. 부모, 연인들, 아내를 레즈비언에게 빼앗긴 억세게 운 나쁜 남자와 유부남을 사랑한 여자까지 다양하게 망라한다.


그 중 특히 해리스티븐슨(모건프러먼)의 상처와 이를 치유해가는 과정이 특히 인상 깊다. 해리스티븐슨 교수는 아픔이 많은 사람이다. 헤로인과다로 아들을 저 세상으로 일찍 보낸 데 대한 죄책감이 가슴 한구석 깊은 무게감으로 짓누른다.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소일거리로 보내는 시간외엔 늘 그런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질긴 기억의 파편들을 덜어내기에 현실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그래서 해리스티븐슨 교수의 삶은 자체로 온전하지 못하다. 아득하게 먼 길을 굽이 돌아온 듯 주름이 깊게 패여 버렸고 군데군데 검은 딱지가 근심마냥 얼굴너머 그득하다. 위안은 늘 곁에 두고픈 아내와의 와인한잔과 사랑으로부터 방황하는 주변인들을 달래주고 치유하는 일이 고작이다.


주변인들이 겪는 사랑에 대한 관찰은 그래서 그에게 의미 있다. 관찰자체가 삶의 구비구비 사람과 사람사이에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다가 종극에 이르러 가족이라는 새로운 연결고리의 구실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에피소드는 대게 운명에 초점이 맞춰진다. 영화 속에 거론되는 운명의 실체는 무기력한 우리 인간에게 너무나 가혹한 깨달음을 안겨준다. 결국  어른들의 사랑은 성장통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운명에 겸허할 줄 알고 상대의 입장에서 눈을 뜨는 방법등을 가르친다. 그 순간이 비로소 그들을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결 론으로 귀결된다.


아늑하면서 아득하고 지루하지 않으면서 매끄럽다. 색이 밝다. 아니 푸르다는 표현이 오히려 정확할지 모르겠다. 좋은 느낌의 향이 난다. 사랑에 대한 작은 진리하나를 체득하고 싶다면 영화를 추천한다.

2009년 5월 10일 일요일

[용의자 X의 헌신] 스릴러를 뛰어 넘는 역작.




일본의 인기 드라마 ‘갈릴레오’를 원작으로 하는 용의자x의 헌신은 제목자체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시나리와 극적 반전은 올해 본 스릴러물 중에 단연 최고라 꼽을만하다.

 

용의자


<묘한 표정의 츠츠미신이치의 장면이 기억에서 오래 머문다>

 

영화의 재미는 줄곧 ‘어떻게’라는 물음을 던져준다. 의도하지 않은 살인사건에 휘말린 이웃집 모녀<야스코>를 위해 옆집에 홀로 사는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가 생각해낸 것은 살인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를 완벽하게 구성하는 것이다. 평소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이시가미>는 논리적인 사고와 상황판단으로 경찰이 제시하는 물음들에 대한 알리바이를 면밀하고 치밀하게 준비함으로써 수사팀을 곤욕스럽게 한다. 하지만 학창시절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물리학자 <유카와>교수가 수사에 참여하게 되면서 쉽게 마무리 될 것 같던 완전범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사실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의 대립과 승부욕에 대한 부분은 영화를 전개하는 핵심이 아니다. 헝클어지고 한데 꼬여버린 사건의 실마리 뒤에는 반복된 삶, 무기력하고 무미건조한 삶을 포기하고픈 한 사내의 무기력한 삶이 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리고 차가운 도시에 표류하는 일상에 구원의 손길을 건낸 <야스코>를 향한 마음이 영화의 주축이다.

 

용의자2  용의자3

 

스릴러에 갑자기 왠 생뚱 맞은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랑이라는 핵심을 제외하고서는 영화를 이야기 할 수 없다. 한 사람을 향한 사랑, 가족에 대한 염원과 따뜻한 삶에 대한 희망들이 사건의 이면에 흐르는 극적 반전의 원류인 셈이다.

 

이쯤 되면 ‘어떻게’란 물음이 ‘어째서’라는 물음으로 뒤바뀐다. 사실상 영화는 처음부터 범인을 명확하게 노출하고, 뒤에 벌어진 과정들을 철저하게 숨겨버린다. 관객들을 줄곧 사건을 추론하고 추리하게끔 만들지만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명확하게 사실화하지는 않는다. 수사팀과 <유카와> 교수가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과정들을 비춰가면서 실제 그 안에 숨겨진 복선과 의미들을 하나 둘 끄집어 낸다.

 

하지만 이런 사건의 진실도 영화 속에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이는 <이시가미>와 <유카와> 교수사이의 대화 ‘그 문제를 푼다해도 아무도 행복해 지지 않아...’란 대사 속에 잘 녹아 있다. 그리고 감독은 애초 관객을 통해 제시한 문제들을 ‘사건에 국한해서 접근하지 말고, 모든 관점을 바꾸어서 살펴볼 것을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기하문제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함수 문제라는....관점을 바꾸면 풀 수 있다...

 

모든 해답은 영화 속에 들어 있다. 하지만 그 관점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고 줄곧 관객의 상상의 끄집어 내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그래서 영화 속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놓치지 않고 몰입할 수 있다. 영화 초반에는 <이시가미>의 논리적인 추론과 치밀함에 놀라고, 후반에 가서는 ‘어째서’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관객 스스로가 찾을 때쯤 기존의 스릴러물이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단편적인 반전 이상의 감흥에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는 영화다.

 

해답을 거부하고, 얼마든지 사건에 대해 추론할 수 있고, 정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것 역시 본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야스코>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삶의 또 다른 의미를 찾게 해준 은인에 대한 헌신으로 자신의 삶이 한층 의미를 더해간다는 사실은 마지막 <이시가미>의 억척스런 눈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